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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외침이 느껴지리

[계기수업] 세월호 참사, 그날의 기록

by 지잉남 2023.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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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외침이 느껴지리 "세월호 참사, 그날의 기록"을 통해 세월호의 아픔을 다시 한번 느껴봅니다.

 

2014년 4월 15일 선원 및 승무원 33명, 여객 443명, 화물 2,142톤을 적재하고 인천항을 출항하여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는 4월 16일 오전 8시 50분경 전남 진도군 병풍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 가만히 있어! >
  선내에서 위치를 벗어나지 말고 구명조끼를 착용하라는 방송이 반복됐다. 해경 헬기가 도착해 일부 인원이 탈출하는 중에 선실이 더 안전하다는 방송이 나왔다. 이미 배가 침몰하는 위급 상황, 단원고 학생들을 지목해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이 있었다. 선원이나 해경 중 누구도 퇴선을 지시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대기 방송은 승객의 탈출을 의도적으로 막았다.

  생존자들은 “자신(학생)도 빠져나왔는데, 어른(선원)의 도움이 있었다면 충분히 탈출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학생들은 서로 구명조끼를 입혀주고 격려하며 구조를 기다렸다. 선실에 머물기보다 밖으로 나가라는 부모의 당부에도, 본인이 움직이면 모두가 더 위험해지리라 말하며 공동체를 배려하는 학생도 있었다. 또한, 수영을 못하는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벗어 주고 탈출했다가 희생 당한 학생, 갑판까지 탈출했다가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갔다가 끝내 구조되지 못한 학생도 있었다.


< 책임을 다하지 않은 사람 >
  선장은 선원의 비상 부서 배치 명령도 하지 않았고 선장과 일부 선원은 승객에게 선내 대기를 지시한 후, 구조를 위해 출동한 해경 123정을 타고 배에서 탈출했다. 이에 대법원은 적절한 시점의 퇴선 명령만으로도 상당수의 피해자의 탈출 및 생존이 가능했다고 판단했다. 결국 선장과 선원들은 승객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임을 예견했음에도 승객을 배 안에 대기시킨 채 자신들의 목숨만 구한 것이다.


< 가만히 있지 않은 이들 >
  사무장은 아내와 마지막 통화에서 학생을 구하러 가야 한다 말하고 승객 구출에 앞장섰다. 한 승무원은 50여 명의 승객 탈출을 돕고 정작 자신은 살아오지 못했다.
탈출에 유리한 5층의 선생님들도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내려갔다가 희생됐다.
구조 책임자들이 배를 버리고 탈출한 순간, 배 안에 남은 사람들은 오히려 서로 돕고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애썼다.

 

< 세월호 침몰의 원인 >
  세월호는 건조 당시, 최대 여객 탑승 인원이 804명이었다. 해운사는 더 많은 승객과 화물을 운송하려 선실을 추가해 여객 정원이 921명이 됐고 선박 무게 중심이 약 51cm 상승했다. 화물 최대 적재 한도는 987톤이지만, 실제 2,143톤을 적재해 1,156톤을 과적했다. 평형수는 1,703톤을 채워야 했지만, 761.2톤을 채웠다.
이로 인해 세월호는 선박 복원성이 떨어진 상태였다. 법원이 “조타수 등의 과실”을 무죄 선고하면서 세월호의 정확한 침몰 원인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우리는 지하철을 탈 때, 운전사의 면허를 확인하지 않는다. 운전사는 승객에 대한 윤리적 책임감을 지녔으리라 신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호 선장은 윤리적 책임감을 저버렸다.


우리는 안전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가?
다음 세대에게 어떤 사회를 선물해야 하는가?
이윤 추구보다 인간 생명의 소중함이 먼저 되길, 학생이 삶의 주체로서 움직일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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